익명 21:57

경싱감사 김수에 대해서 자세히 좀 알려주세요 경상감사 김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세요

경상감사 김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세요

1573년(선조 6)에 알성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을 지냈다. 홍문관 교리 재직 중 왕명에 따라 『십구사략』을 개수하였다. 1583년 번호가 침입해 경원부가 함락되자 이조정랑으로서 도순찰사 정언신의 종사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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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신급의 상소에서 조정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이후 직제학, 승지 등을 거쳐 1587년 평안도관찰사에서 면직되었으나, 변방 정세에 밝은 관리를 삼도에 파견할 때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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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정철의 건저 문제에 대해 옥당에서 탄핵하는 차자를 올리려 했으나, 부제학으로서 사성 우성전의 집에 의논하러 가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올리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사간 홍여순이 우성전을 탄핵하며 조정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었고, 이 인물은 남인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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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우감사로서 진주를 버리고 거창으로 도피했다.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백성들에게 피난을 알렸지만, 결과적으로 도내가 비게 되어 왜적을 방어할 수 없었다. 전라감사 이광과 충청감사 윤국형이 근왕병을 일으키자 겨우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했으나, 용인에서 패배하였다. 이후 경상우도로 돌아갔고, 영남초유사 김성일에게 패전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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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와도 큰 불화를 겪었으며, 김성일의 중재로 갈등이 일시적으로 해소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 도피와 소극적 대응으로 인해 지방 주민들로부터 조급하고 각박하며,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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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8월 한성판윤이 되었고, 이후 지중추부사, 우참찬 등을 거쳐 1596년에는 호조판서로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확보하기 위한 징수 업무를 맡았다. 이후 영중추부사에 올랐으나, 1613년 광해군 때 손자인 김비가 옥사에 연루되면서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사후 시호는 소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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