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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불교는 칭기즈칸부터 시작되었죠? 불교에 대해선 무지한 멍청이지만 기독교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외계행성에도

불교에 대해선 무지한 멍청이지만 기독교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외계행성에도 사람이 산다고 주장하고, 본인과의 수차례 논쟁에서 본인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판판이 나가떨어졌고, "내가 잘못 알았다. 욕설을 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한 이후 돌아서서 곧바로 또다시 온갖 욕설을 내뱉고, 본인의 저작인 <감추고 싶은 진실>을 구매해서 읽어보지도 않고 개○ 같은 후기를 올린 인간 말종인 개불 정○신○병○환○자가 가톨릭란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올렸군요.------------------------------샤머니즘 믿는 몽고인들 학살을 불교도 소행으로 거짓말하면 천국 가나요?​60가지 불교 이야기라는 천주교인 왈▨ 불교(인류 역사 이래 최고, 최대로 사람을 많이 죽인 종교)의 살○인 행각○ 불교가 국교였던 몽고: 서기 13세기 칭기즈칸의 정복활동으로 수억만 명 희생 추정· 중국 인구 1억 2천만 명에서 6천만 명으로 축소· 러시아 인구 2,500백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축소· 루스 공국 인구 절반 희생· 헝가리 인구 200만 명 중 절반 희생· 이란 메트르에서 70만 명, 니샤푸르에서 100만 명 이상 희생​칭기즈칸의 정복 전생 시 몽고인들은 샤머니즘을 믿었다가 정복지에서 이슬람교, 심지어 기독교까지 받아들여 황제 어머니나 아내가 기독교인도 있었고, 불교를 믿은 것은 중국을 정복하고 티베트를 정복한 뒤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죠. 몽고인들이 불교를 믿은 것은 정복 전쟁이 다 끝난 뒤인데도 불교도로서 학살했다고 거짓말하는데 왜 그럴까요?가톨릭만 학살을 많이 한 것을 숨기려고 불교도 학살 많이 했다고 거짓말하고 싶어서인가요?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이런 거짓말하면 죽은 뒤 어디 가나요?------------------------------그래서 가톨릭란에 질문을 올려봅니다.​저 개불은 정○신○병○환○자이니 역사에 무지하고 개소리를 지껄여도 정상인 우리가 이해할 필요는 있겠죠. 저 개불은 정상이 아니니까요.​아래의 불교 관련 기관인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선 몽골제국이 어떻게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몽골 불교는 칭기즈칸 시대부터 라마교 시대까지를 지칭한다.○ 칭기즈칸이 불교를 접한 것은 몽골제국을 선포한 서기 1205년 경이다.○ 서기 1219년 칭기즈칸의 장군인 무칼리는 불교에 동화되어 후원한다.○ 칭기즈칸의 정복 시대를 함께한 쿠빌라이 칸도 불교로 교화했다.○ 서기 1239년 칸인 코덴은 티베트를 침공한 이후 코덴과 더불어 몽골족들은 불교에 동화된다.○ 서기 1260년 쿠빌라이 칸은 몽골제국의 국교를 불교로 선포한다.​▨ 몽골 불교의 역사몽골 불교의 2기는 13세기 초 칭기스칸(Chingis Khan)이 등장하는 정복전쟁의 시대 때부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원나라의 라마교 시대까지이다. 칭기스칸이 불교를 접한 것은 몽골제국이 선포되기 전해인 1205년 경으로 보인다. 칭기스칸은 이때 만난 티베트 불교도들의 가르침에 감명받고 당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사캬 라마(Sakya Pandita)에게 메시지를 보내 전쟁이 끝나면 자신에게 와서 불교를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칭기스칸 자신은 여러 종교 전통을 접하는 와중에서도 자신들 조상들이 섬겨운 하늘의 신 ‘텡그리’에 대한 샤머니즘의 신봉자로 남았다.​1219년 중국 산서성으로 침입한 칭기스칸의 장군 무칼리(Mukali)는 하이윈(Hai-yun)이라는 중국 선종의 승려를 만나 감화를 받고 그를 후원하기 시작한다. 이후 하이윈은 구유그 칸에게서 초청을 받아 중국을 포함한 몽골 통치 지역 내의 모든 승려들을 감독하는 수장으로써 임명된다. 그는 몽케칸(Mongke Khan)의 통치기에도 같은 직위를 유지하였고 차기 지배자인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도 불교로 교화한 것으로 보인다.​1239년 어거데이 칸의 아들인 코덴(Koden)은 중국 사천성을 점령한 이후로 이웃 지역인 티베트를 침공하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티베트에서는 사캬 사원의 승원장이자 사캬파의 수장인 사캬 판디타(Sakya Pandita)를 협상자로 보내게 된다. 사캬 판디타는 티베트 내에서의 자신의 종주권을 인정받고 몽골에 대해서 티베트의 충성을 약속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이후 코덴을 비롯한 몽골족들은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과 의식에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1253년 쿠빌라이 칸은 사캬판디타를 그의 궁정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초대장이 도착하기 전에 사캬 판디타는 죽고 그의 사촌인 사카 팍파(Sakya Pakpa 또는 Phags-pa)가 대신 초대를 받아들여 몽골로 간다. 쿠빌라이 칸은 당시 20대 밖에 안된 이 젊은 티베트 승려에게 감화 받아서 1260년에 ‘국사(The Guru of the Empire)’의 칭호를 주는 한편 티베트 불교를 몽골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출처: 대원사 티벳박물관:: 한국의 작은 티벳! >티벳불교 자료실​▨ 쿠빌라이 칸 시대에 몽골제국 최대 영역 확보칭기즈 칸은 1219년부터 1225년까지 남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에, 서로는 카스피 해를 넘어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거의 지배하에 두고 1227년 서하를 정복하였다.[25] 제2대 오고타이 칸은 1234년 숙원이었던 금나라의 완전 멸망을 성공시키고 하남 지방을 완전히 석권하였으며 서방 원정군은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뻗어나갔다. 제4대 몽케 칸은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켜 그 영역은 동으로는 한반도의 동해부터 서로는 동유럽과 아나톨리아에까지 이르렀다. 몽케 사후 뒤를 이은 쿠빌라이 칸은 1279년 중국 남송을 멸망시켜 최대 판도를 이룩하였다.출처: 몽골 제국 - 나무위키​▨ 쿠빌라이 칸, 몽골제국의 정복 시대에 함께함.몽골이 금나라를 멸망시킨 뒤 오고타이 칸은 툴루이계에게 하북 평야 지역의 관리를 일임했다. 쿠빌라이도 이때 한 지역을 받았는데, 아직 젊은 쿠빌라이는 통치 경험이 없어서 몇몇 관리들에게 통치를 완전히 맡기고 영지를 떠났다.​1251년, 형 몽케가 제4대 대칸의 자리에 오르자, 중국 방면 대총독에 올라 내몽골 지역에 자리 잡았다. 몽케 칸은 오고타이 칸이 계획했던 남송과 중동 정복의 실행을 결정하여, 쿠빌라이에게는 중국 전선을, 그리고 다른 형제인 훌라구에게는 중동 전선을 맡겼다. 쿠빌라이가 북중국을 잘 다스려 화남 지역은 농업 생산량이 늘었고, 서민은 삶의 질이 올라갔다. 이러한 성공으로 북중국의 장수들과 관리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이들의 지지는 이후 원 제국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1253년, 쿠빌라이는 몽케 칸의 명령을 받고 운남 지방의 대리국(大理國)을 정벌하여 남송의 측면을 돌파하고자 했다. 쿠빌라이는 먼저 사자를 보내 항복을 권유했으나, 대리국의 단씨 왕조는 사자를 죽이고 항전했다. 쿠빌라이는 1254년 대리국을 멸망시켰는데, 대리국에서 몽골의 사신을 죽였음에도 몽골 제국의 전통과는 달리 대량학살을 하지 않았다.출처: 쿠빌라이 칸 - 나무위키​따라서 정리하면, 몽골 불교는 불교를 접하고 감명받은 칭기즈칸부터 시작된 것으로 불교 측에선 보고 있으며, 이후 그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장군들, 몽골족은 불교에 동화되어 신자가 되며, 서기 1260년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된다.​칭기즈칸은 불교에 감명을 받아 불교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의 자식들과 가족, 장군들, 몽골족 등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으니 그의 가족이나 장군들도 불교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불교 측에선 몽골 불교를 칭기즈칸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지 않겠는가.​또한 과거, 우리나라에서 종교인구를 조사하는 경우 "1년에 한 번도 절에 가지는 않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불교'라고 응답해 달라."라는 멘트가 있었고, 실제로 불교에선 "절간엔 다니지는 않지만 석가모니를 믿는 즉시 불자가 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칭기즈칸 또한 불교 신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다.​그러니 칭기즈칸이나 그의 가족, 장군, 몽골족이 불교를 호의적이거나 믿었으니 불자들이 수억만 명을 죽였고, 국교로 선포한 이후에도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겠는가. 자신들의 계명에 "살생하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음에도 말이다.​그래서 임진왜란 때 중들이 승병을 조직하여 적군이라곤 하지만 수많은 왜군을 죽였음에도 "호국불교"라고 기만하고, 또 현재 개불들의 범죄율은 불교·개신교·천주교 중에서 1위를 달리고, 불교 여성들의 범죄율은 타 종교를 압도하며 1위를 달리고, 중들은 토막까지 내며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겠는가. 이런 종교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개불들은 자신들의 살생을 홍보하고 다니는 것일까?​▨ 석가모니, 아내가 3명인 색마○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세 번의 장가 : 네이버 블로그​▨ 석가모니, 죄 없는 어린아이 2명을 죽인 살○인○마이때 두 동자가 도망하여 부처님의 처소에 오니, 부처님께서 업의 과보가 헛되지 않음을 알게 하고자 하시어 곧 신력(神力)으로 발우를 화하여 크게 하시고 그것으로 두 동자를 덮어 두었더니, 그들은 곧 발우 밑에서 데어 죽고 말았다.출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석가모니, 자신의 말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면 죽여도 된다며 살○인 교사“선남자야, 일천제들은 선근을 끊어 버린 탓이다. 중생들은 모두 신(信) 등의 5근(根)이 있지만 일천제들은 영원히 끊어 버렸다. 그러므로 개미 새끼를 죽여도 살생한 죄를 얻지만 일천제를 죽인 것은 살생한 죄가 없다고 한다.”주) 일천제: 아무리 수행해도 절대 깨달을 수 없거나 정법을 비방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거나 인과응보를 부정하거나 불성을 버린 자 특히 브라만교의 수행승을 지칭출처: 대반열반경​▨ 불교(인류 역사 이래 최고, 최대로 사람을 많이 죽인 종교)의 살○인 행각○ 불교가 국교였던 몽고: 서기 13세기 칭기즈칸의 정복활동으로 수억만 명 희생 추정· 중국 인구 1억 2천만 명에서 6천만 명으로 축소· 러시아 인구 2,500백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축소· 루스 공국 인구 절반 희생· 헝가리 인구 200만 명 중 절반 희생· 이란 메트르에서 70만 명, 니샤푸르에서 100만 명 이상 희생· 1281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략으로 1만 명 이상 희생· 그 당시 세계 인구 11% 감소​○ 불교 국가였던 일본: 서기 16세기 이후 수천만 명 희생 추정· 서기 16세기 개종하라며 천주교인 수십만 명 희생· 중국 침략으로 중국인 3,500만 명 희생· 난징 대학살: 강간 후 살해 등 30만 명 희생·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수만 명 희생· 731부대 생체실험: 1,539명 희생· 위안부: 수십만 명 희생· 강제징용: 수백만 명 희생· 전쟁: 군인·민간인 수천만 명 희생​○ 대다수 불교를 믿었던 중국: 서기 19세기 이후 주변국 희생자 수백만 명 추정· 주변국 침략: 몽골·티베트·위구르· 전쟁: 6·25전쟁·베트남 전쟁· 문화 침략: 동북공정·문화공정· 영토 분쟁: 남중국해·대만·한반도​○ 대다수 불교를 믿었던 인도: 피해자 수백만 명 추정· 인도·파키스탄 전쟁: 민간인 수십만 명 희생· 인도(힌두교, 타밀족)·스리랑카(불교, 신할리족) 내전: 민간인 수십만 명 희생​○ 불교 국가인 베트남: 서기 17세기 천주교인 수십만 명 희생 추정○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 1970년대 지식인 수백만 명 희생 추정○ 불교 국가인 미얀마 내전: 수만 명 민간인 희생 추정​▨ 중들의 살인 행각, 성폭행 등 범죄○ 대승불교 : 중들의 성추행, 성폭행, 살인 행각 : 네이버 블로그​▨ 불교·개신교·천주교 중 불교의 범죄율이 1위○ 종교별 범죄 : 네이버 블로그​▨ 여성 범죄율은 불교가 압도적으로 1위○ 불교의 여성 범죄율(Revision) : 네이버 블로그​그래서 질문드립니다.질문 1: 불교 측에선 몽골 불교는 칭기즈칸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질문 2: 수억만 명을 죽인 불교가 그렇게도 자랑스럽습니까?​질문 3: 인류 역사 이래 불교만큼 사람을 많이 죽인 종교가 또 있었던가요?

1. 올리신 질문글에도 보면 "몽골 불교의 2기는 13세기 초 칭기스칸(Chingis Khan)이 등장하는 정복전쟁의 시대 때부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원나라의 라마교 시대까지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스스로 언급한 바와 같이 칭기스칸 시대의 불교가 2기라고 되어있습니다. 몽골 고원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대략 6~7세기경입니다.

당시 몽골 고원에는 다양한 투르크계와 유목 민족이 섞여 있었고, 수나라, 당나라과의 교류, 소그드 상인의 활동을 통해 불교가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불교는 지배적인 종교까지는 성장하지 못했으며, 사원도 일부 존재하는 정도였고 주로 귀족·상류층 중심의 영향이었고요. 국가차원에서 크게 확산된 시기는 13세기 칭키스칸과 그 후계자들의 때가 맞습니다.

2. 불교 교리만 보더라도 살생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3. 일단 불교가 주교인 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과 학살이 종교, 불교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6.25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은 사상 때문이지 종교때문이 아니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은 힌두 이슬람이지 불교의 영향은 없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된 것은 맞지만, 애초에 불교가 주 종교가 아닙니다. 대다수가 불교를 믿는다는 전제부터가 맞지 않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도 종교탓을 할 수는 없고요. 기독교 국가나 이슬람 국가에서도 재해나 전쟁은 있어 왔습니다. 저 논리라면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 사고 전쟁은 기독교 탓이고,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난 모든 사망도 이슬람 종교 탓이 되어버립니다.

사실 종교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를 정확히 숫자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시대, 기록, 동기(정치/경제/영토/종교 혼합)가 뒤섞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맥락 기반으로 정리하자면,

역사적으로 종교로 인한 살생 규모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 기독교의 경우

  • 십자군 전쟁(11~13세기): 수백만 사망

  • 종교개혁 전쟁 / 30년 전쟁: 유럽 전체 인구의 15~20% 감소

  • 식민지 개척에 동반된 정복과 전도: 아메리카·아프리카 등 광범위

폭력 규모가 인류사급 대형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슬람은 역사 초기부터 정복을 통한 국가 확장이 이루어졌죠.

  • 라시둔·우마이야·아바스 왕조 시기 정복 전쟁, 오스만 제국 종교전부터 해서

  • 현대까지 이어지는 종교적 무장단체들도 현재 진행형이고요.

이 역시 광범위한 제국 확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사망자 규모가 큽니다.

역사 속 불교 폭력 사건들을 보면

일본 — 불교 사찰 무장 세력 (僧兵, 소헤이)

  • 중세 일본에서 사찰이 사병을 보유하고 정치에 개입했던 것으로

  • 수도 교토를 공격하거나 다른 사찰과 전쟁했고,

  • 수백 년 동안 지속된 내전의 한 요소가 되었죠.

미얀마 — 로힝야 학살 관련 불교 민족주의

  • 일부 극단 불교 세력이 폭력 가담한 것이죠. 다만 이는 민족주의+정치 성격이 강하고, 교리 때문이라기보단 정치 갈등이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스리랑카 — 싱할라 불교 민족주의

  • 내전 과정에서 불교 민족주의 그룹이 정치적 폭력 가담한 것으로, 이런 사례는 분명 존재하지만, 스케일이 지역적이라 수십만~수백만이 사망하는 대규모 전쟁과는 비교가 어렵습니다.

  •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한 답 임을 밝힙니다.